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구원을 받았는가?' 라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고등학교 때인 걸로 기억한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전도사님께 질문도 해 보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성경을 읽어도 구원에 대한 갈증은 점점 의문만 커져가고만 있었다.
'도대체 나는 구원 받았는가?,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확신한다고 확신하는 건가?, 예수님을 믿으면 의인이라고 하면서 나는 왜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걸까?'
이러한 불안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여전히 해 나가면서 어느 때는 말씀 가운데서 은혜를 받아 해결 된 것처럼 기쁘기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또 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마치 쳇 바퀴 도는 다람쥐 처럼 다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나날들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점점 머리만 굵어지는, 성경 지식만 잔뜩 쌓여가는,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쪼끔 발버둥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사람이었다.
'킹덤 인사이트' 책을 읽으며 내 눈과 마음에 확 들어온 부분은 "거룩" 이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치고는 특별할 것 같지도 않는 그러나 특별한 '거룩'이라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위축시키는 단어다.
책에 나와 있듯이 왠지 기독교인이면 손해를 보면서 도덕적으로 친절하고 선량한 성품을 가지고 말도 아주 곱게 해서 상대방을 만족시켜줘야 할 것 같고, 얼굴은 항상 '켄터키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어야 '거룩' 할 것 같은, 아니 크리스쳔 다운 삶을 살아야 되는 강박적인 이미지를 떠 오르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진짜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결국은 주변 사람)들에게, 또한 나 자신에게 믿음의 삶을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웃프게도 어느 순간 나의 '의'를 추구하는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단어로 '거룩'을 포장하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인양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을 때도 있었으면서 거꾸로 자포 자기로서의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우리의 거룩은 우리 자신의 의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 '소속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왕'이 시기에 그 '왕'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나를 찾아오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소속감.
아니 거꾸로 내가 '가짜 왕'이었다는 것을 '진짜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오셔서 찬탈하시고 거꾸러뜨리신 사건이 진짜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시고 나의 소속됨이 '가짜 왕'인 '사단'에서 '진짜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바꾸게 하신 사건...
그것이 어느 순간 감격에서 당연한 것으로, 지혜에서 성경 지식으로, 감사에서 권리로, 순종에서 행위 율법으로 바뀌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룩'을 소속됨에서 행위 율법인 나 자신의 의로움을 추구하는 변질된 신앙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올바른 '거룩'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일까? 또한,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이고, 그렇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기존에 교회에서 배웠던 성경공부가 잘못 된 것일까? 누구말마따나 '가스라이팅' 당한 것일까?
그러면서 지나온 교회에서의 삶을 하나씩 하나씩 추적하면서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은 '세계관'이었다.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 위에 '성경'과 '기도'와 '예수님'을 쌓아놓고 성경을 잃고 적용하고 기도할 때마다 나의 '인본주의적 세계관'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보았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여전히 가고 있었다.
'거룩'은 구별일진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면서도 구별된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모래위에 '성경'과 '예수님'과 '기도'를 쌓아 올렸다는 것도 모르고 그대로 신앙의 삶인양 살았다. 그러기에, 세상 속에서 살면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모래위에 쌓아올린 가짜 사상인지도 모르면서 '말씀' 위에서 바라보았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오직 예수님 말씀의 세계관 위에서만 행하는 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인본주의적 세계관'인줄도 모른 채 교회에서 예수님 말씀도 듣고 능력도 행하고 봉사도 하고, 그러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
그것이 '양'인지 '염소'인지 드러나는 때가, 무엇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에 의해서 '박해'가 일어날 때 - 이것의 무서움은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그것을 행하는 자신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모르는) -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그것을 그대로 삶으로 옮기는 행동을 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양' 과 '염소'가 나뉘는 때다.
이것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자의 '진리'에서 비롯되기에 그 '진리'라고 부르짖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나는 때다.
물론, 이것이 누가 '구원' 받았다고 연결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깨어난 자로서의 은혜를 주셨다면, 또한 그것에 합당한 주님의 마음으로 겸손과 온유함으로 사랑 가운데서 다른 사람도 깨어나기를 지혜롭게 구할 수가 있다.
그것이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또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은혜로 정말로 지지리도 깨닫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나에게도 아주 세심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환경을 주셨다면, 지금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미련한 입술과 발로 통하여 바로 내 삶의 그 곳에서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일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