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의 "킹덤 인사이트" 독서 기록 #1

김영국 김영국
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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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인사이트는 기독교 보수주의 또한 신앙 계몽 필독 도서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계속 자기성찰과 부끄러웠던 과거를 비판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은 정상적인 ‘속았던’ 기독교인의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적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역설-“선악과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반역’이다.”

-이렇게 세계관은 중요하다.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셔서 타락하게 하셨나?”라는 말에 조금이라도 공감했고 나 스스로 높아져 있던 과거를 회개한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말씀을 지켜드리는 것과 지키는 것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 이시다”

-항상 내 마음속 깊은 마음의 동기를 돌아보는 훈련을 많이 했지만 성경에 비춰서 하기보다 내 마음의 하나님을 향한 거짓이 없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만은 정말 순수했고 열정이 있었고 가끔 죄를 짓더라도 사람으로써 그럴 수 있고 정죄는 나쁜 것이니까.

그렇게 되면 죄의 기준도 자기자신이 되어 버린다. 성경만이 기준이다. 다시 정립해가고 있다.

한국 대다수의 기독교는 “하나님은 ㅇㅇ한 분이시다” 라는 프레임으로 죄를 합리화하는 것을 아주 잘한다.

성경엔 그렇게 쓰여 있지 않다. 잊고 살았고 나 또한 편하게 믿고 살았다.

 

@단어를 통해 파생되는 것에 항상 주의 (사랑, 정의 등등) “내 상식으로 성경과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자”

-사랑과 공의 등등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을 ‘사회적 통념’으로 이해했을 때,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도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도 했고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와 함께 가지 못하시기에 아무 죄 없는 흠 없는 어린양을 잡게 하셨다.

잔인해 보이고 투박해 보이기도 한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

내 상식안에 가둬지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랑’ 또한 아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선택지를 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성경적 선택지를 줘야한다.

 

@하나님이 예수님 이시다. “예수님의 3년반의 사역으로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지옥문이다.”

-성경 읽기 싫은 사람들의 복음서 위주의 신앙생활을 경계해야 한다. 창세기 1장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온라인상으로 열심히 보수주의 기독교에 대해 얘기하면 항상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은 좌파였어”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사람들에게 구약을 이야기하면 이미 지난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대단히 틀린 이야기임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염목사님의 설교중

“그 표현은 새로운 말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에 쓰인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이 말은 기존 목사님들이 몰랐을까? (몰랐을 수도..)

알아도 자주 하지 않았던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 이겠지만 내가 생각할 땐 귀찮음…?.....

예수님의 이야기만 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연결된 구약의 말씀까지 가서 굳이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수호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고 짐작해본다.

 

@영지주의 “구원은 출발선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뉴에이지와 영지주의가 만나면 정말 폭발적인 예배사역이 가능하다. 예배 안에 능력(감정적 은혜)이 엄청나다. 경험했고 그 후의 실패까지 계속 경험했다. 영지주의의 삶은 찬양 속 예배에 ‘요한계시록’을 녹이기에 아주 탁월하다. 전체를 사용하지는 않고 몇몇 부분.. ‘삶의 예배’라는 되지도 않는 말로 삶을 예배의 위치까지 올려서 이미 원래 힘든 인생을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서 힘든 것처럼 속이고 고난을 받는 은혜로운 여정으로 바꿔버린다. 그래서 위로를 받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의무는 그들에게 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교회, 큐티 속에만 계시는 하나님이시니까.

‘보편적 삶’ 만으로 충분히 지치고 ‘나의 삶’은 개인주의적 ‘전진’과 ‘승리’로 충분하게 포장하여 말씀 짜집기로 세상의 다른 소리는 들어 올 수 없는 ‘귀마개’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나의 삶’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경적인 단어가 아니다.

 

@거룩과 성품은 성경을 통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

-점잖은 기독교인들, NICE한 기독교인들을 경계하자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다.

내 고향 전라도, 선교지, 그리고 선교단체에 충분히 많은 좋은 사람들 그들은 정말 ‘성인’으로 불릴 만큼 자비로웠고 개인성찰 또한 좋고 지식 또한 깊었다. 그들과 그들의 제자 그리고 나 또한 좌파였다. 단순 정치좌파가 아니라 모든 생활과 기독교적 세계관까지…

찰리커크를 기억하자.(우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좋은 롤모델로 기억하자는 말이다.) 끝없이 성경적 가치를 얘기하고 때론 논쟁하고 때론 목소리가 높아지더라도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를 제대로 안지 얼마 안된 날 그를 실제로 처음 보았고 도전 받았고 그는 성경의 말씀대로 미움 받았다.

거룩과 성품의 우상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관계의 족쇄에 매이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

 

@교회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적으로 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교회 안에서의 자발성과 자녀의 교육 진리의 칼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세상의 체제들과 영의 싸움을 싸우게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거칠 수 있지만 올바른 피아식별 및 성경을 알려주는 것

훈련소의 진짜 목적을 항상 기억하자. 영적 소비자의 삶을 벗어나자! 더 나아가 영적 서비스 제공자도 아니다.

 

@미디어의 중독 “나는 왜 이렇게 자랐는가?”

-어린시절 기억에 큰 기억이 없다. 공교육과 밥상머리 교육을 제외하면 큰 가치를 전수받지 못한 것 같다.

무어라 말씀은 하신 것 같으나, 게임과 또래집단에 너무나 진심이었던 학창시절은 부모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부모님도 그것이 얼마나 큰 독인지 몰랐었다.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감사하게도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 생활로 이어올 수 있었다. 뜨거운 예배와 열정적인 신앙생활 그럼에도 분별함에 있어 장님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교회, 선교단체에서 여러 훈련을 받았지만 제대로 세상을 보는 방법은 보지 못했다.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절여지기 시작하면 가정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다.

 

@돈의 역설 “청빈한 삶은 오히려 맘몬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내 고향 전라도에서는 재산 많은 사람에 대한 부의 재분배가 기본값이다. 대놓고 티내지는 못하지만 청빈한 삶이 성경적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내 안에 흐르는 피는 계속해서 인식시켜줘야 한다.

있으나 없으나 재정에 휘둘리지 말고 내 할 일에 충실하며 내 직장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지만 하나님 저희 가정의 재정에도 ‘왕’이십니다. 아멘

 

!!!좌파 이데올로기는 이미 우리의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가정의 해체 공교육의 오염 언론의 좌경화 등등 ‘중도’라는 탈을 쓰고 잠식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몰라서도 있지만

알면서 말을 안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 장님처럼 된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100% 알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이정도 안다 싶으면 나가서 대화하고 성경을 보며 상고하고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당연히 제외하고)

SNS나 좋은 연습공간이 많이 마련되어 있으니 한걸음 씩 떼는 연습을 하자!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인플루언서다. 책임감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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