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진의 "킹덤 인사이트" 독서 기록 #1

홍승진
2026.02.08
0

먼저 개인 스스로 이 책을 읽으며, 30년간 지켜왔던 신앙생활의 본질을 파악하고 관철하여 반성할 수 있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기존에 틀에 갇혀 옳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어찌 보면 모순된 점이 있음을 스스로 일깨울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 챕터로 나뉘어 볼 때, 단계별로 나누어 짐을 알 수 있었다.

‘삶의 기준’ ->’그리스도인 으로의 정체성’ ->’가정과 교육 & 경제’ ->’정치와 사회’와 같이 책이 전개됨이 성도 스스로의 개인의 삶의 중점부터 넓게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까지 단계별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됨에 따른 ‘삶의 기준’은 과거 혹은 현재까지 살아온 삶의 가치로써 제일 된 우선순위를 어떻게 두고 살아왔는지, 혹은 살아갈 것인지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삶의 기준은 성격적이지 못하였다. 사실 앞으로도 삶의 기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성경에 기반하여 살아가려 기도하고 노력하겠지만,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매번 넘어지고 또한 기준이 그때그때 바뀔 것을 안다.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기도를 드릴 때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내용이 있었다. “나 됨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주시고, 장차 주님이 쓰실 그날에 마땅히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성장시켜 주시며 순종하며 겸허히 주님이 가라 하시는 길로 걸어가게 하여 주세요.” 하지만 나는 모순적이게도 아직까지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10대는 친구들과 어울림이 너무 좋았으며, 20대는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며 방탕하게 생활하는 것이 ‘멋’인줄 알고 당연한 것 인줄 알았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자들 속에 속하여 있으면서 그들의 기준에서 당연한 것이 나 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인줄 알았다.

현재 지금도 지난 일주일만 돌이켜 보아도 내 삶의 기준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 스스로 보인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끼어든 차량에 놀라 비난하며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한 말투 혹은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려 했다.

 

참 어렵다. 고통스럽다. 나의 치부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 돌이켜 보지도 못하고 무관심함으로 방관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님을 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완벽하지 않게 창조하심이 장차 주님 오실 그날에 구분됨을 가지게 하도록 하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그리스도인 으로써도 누군가는 스스로 꾸준히 돌아보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자가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성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헌금하는 것보다,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든 것을 헌금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귀한자라 칭하셨다.

이에 나는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나의 과오를 피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 ’명령’을 따라 조금이라도 주님이 기뻐하실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 기도함으로 회개하며 나아가야 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 “알고 행하는 자의 죄가 더 무겁다.”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였음이 또 앞으로도 계속 넘어질 것임을 알지만 그때마다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키워 나가야겠다.

 

문재인 정권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는 코로나 라는 전세계적 전염성 질병이라는 이유로 교회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고 추적했다. 주위에 큰 교회들은 전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게 문제가 될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때당시 부모님과 함께 출석했던 교회는 달랐다. 온갖 경찰과 주민들의 신고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담임목사님 께서는 예배를 코로나 이전과 동일하게 섬기셨다. 그때 당시에는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시는지, 같은 그리스도인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룰 혹은 예의’ 라는 것을 존중하여 오히려 그게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라 생각을 하던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섭다, 지금껏 신앙생활 한 세월들이 그저 한낮 신기루 같이 느껴졌다. 결국 이후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오직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으며 예배하는 것이 옳고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하였던 부분은 결국 세상 사람들이 정해둔 잣대였음을. 결국 나는 항상 약하다. 그럼에 누구보다 주님의 이끄심이 필요하다. 항상 갈구하며 세상이 정해둔 기준에 빗대어 사고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주님 이끄심에 따라 용감하고 담대하게 구분 지으며 나아갈 수 있는 주님의 ‘구별된 군사’가 될 것이다.

 

과거 나는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이야기하던 부분이 있었다. 술자리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도 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취하지만 않으면 괜찮아!”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모태신앙이라 스스로 자랑하듯 이야기하였지만 그들이 보기에 나는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내 몸이 교회이며, 그 교회를 더럽히는 것이 죄임을 앎에도 애써 보지 못한 척해왔다.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해석하여 맞추어 합리와 하려 함이 얼마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지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와서 생각하여 보면 얼마나 위험한 일들을 스스로 했는지 생각이 든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위험한 일들이란 범죄나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자의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합리화하는 것. 그것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은혜를 받았다 생각하지만 정말 웃긴 것은 정작 말씀에 주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참된 성도인가? 그리고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아름다울까?

나는 책을 읽으며 깨닫은 것이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말씀을 듣고자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 했지만 결국 진정한 ’말씀’과 그 ‘방향성’을 보고 들을 생각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이 나의 어려움을 보듬어 주시기만 바라며 앞으로 있을 문제들에 대하여 이끌어 주심만을 원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마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지난 날을 회개하는 마음. 그 마음들이 내가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을 듣기위한 ‘목적’이 아니었는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만 위로 받으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진정으로 귀 기울일 수 없었기에 마땅히 그 말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정작 하나님의 ‘말씀’ 기억은 못하는 것 아닐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삶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예를 들면 돈, 명예, 미디어 같은 외부적 요소 말이다.

나는 있다. 당장 몇 달 뒤 계약 만기 되는 전세집이 그렇다 결국 돈 말이다. 사실 살아오면서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부모님 그늘아래 살아가면서 부족함 없이 키우시려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돈보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려 하니 가장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나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머리로는 돈, 차 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두 주님으로부터 나옴을 알지만 현실에 맞닥뜨려 있는 나는 오늘도 물질적인 것 때문에 고민하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성경 한구절이라도 더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지 못하였다. 내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만족도 그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나옴을 인정하고 기도함으로 나아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킹덤인사이트를 읽으며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인 으로써의 ‘의무’라고 생각해야 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다.

 

요즈음 한나라의 대통령이 라는 사람이 종교적 탄압을 예시하는 발언들을 내어놓고 있다. 참으로 별볼일 없다. 세상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 혹은 그에 비판하거나 동조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나 또한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목사님에게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Crowd Psychology 라고 있다. 군중 속에 있으면 개인의 판단보다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내가 그러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종교인들이 나서서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존에 다니던 대형 교회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실망감을 느꼈다. 나는 그분들이 “알고서 행하는 자의 죄가 더 무겁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종교의 정치참여가 어찌하여 잘못되었다 생각할까? 역설적으로 바라보자면 종교 없이 정치가 이루어 졌었는가? 과거 이승만 대통령 께서도 우리나라를 건국하실 때 국회 지하실에서 기도로 시작하셨다. 세상의 모든 질서는 성경에서 나오며 그에 기반하여 발전해왔다. 도덕적인 기준, 남자와 여자 라는 성별 그리고 역사. 킹덤 인사이트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사람의 기준으로 우파&좌파 가 아닌 하나님의 공의와 창조질서로 분별할 수 있다면 어떤 정치인이 보다 하나님 기준에 가까운지 ‘기준점을’ 제시해준다.

 

아직은 몇 번은 더 읽어봐야 그나마 내 삶에 이 깨닫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다. 킹덤 인사이트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회개하면서도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말씀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한 현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소한 것들이 그러하다. 좁게는 개인부터 넓게는 사회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모든 사상과 행동들을 그리스도 인으로서 분별력 있게 판단할 수 있고 ‘집단에 휩쓸리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태도’ 즉 ‘군사’로서의 태도를 오직 예수의 이끄심 아래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장차 주님 오실 그날에 기꺼이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함으로 나아가야겠다.

 

0
Comment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