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 다가오는 성서력 12월(아달월)이 되면, 유대인들은 가장 유쾌하고 기쁜 축제 중 하나인 ‘부림절(Purim)’을 맞이합니다. 올해는 바로 오늘(3월 2일,월)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절기는 성경 <에스더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 민족이 하만의 끔찍한 대학살 음모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진멸할 날을 정하기 위해 ‘푸르(Pur, 제비)’를 뽑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 날은, 절망의 날이 기쁨의 날로, 죽음의 날이 생명의 날로 뒤바뀐 ‘거대한 역전’의 서사시입니다.
에스더서에는 놀랍게도 ‘하나님(אלהימ, יהוה)’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는 이야기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천 년 전 페르시아에서 일어났던 이 극적인 반전의 이야기가, 오늘날 영적 전쟁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을까요?

1. 아말렉의 영: 시대를 관통하는 영적 대적
부림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진멸하려 했던 ‘하만’의 영적 뿌리를 추적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부림절 직전의 안식일을 ‘샤밭 자코르(기억의 안식일)’라고 부르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했던 ‘아말렉’을 기억하라는 신명기 25장의 말씀을 읽습니다.
‘하만’은 바로 이 ‘아말렉’의 후손, 곧 ‘아각’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아말렉은 야곱의 형제이자 원수였던 에서(에돔)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민족적 증오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함으로써, 그 혈통을 통해 오실 마쉬아흐(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으려는 사탄의 치밀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말렉의 영’은 시대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습니다. 때로는 로마 제국으로, 때로는 십자군이나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즘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진멸하려 하는 극단적 이슬람 세력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Nicolas Poussin’s painting Victory of Joshua over the Amalekites.
2. 오늘날의 부림절: 중동의 전운과 우리의 분별력
의미심장하게도 지금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바로 이 부림절의 영적 타이밍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이목은 이스라엘과 이란을 비롯한 중동의 거대한 화약고에 쏠려 있습니다.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의 영토를 계승한 국가입니다. 수천 년 전 하만이 유대인을 진멸하려 했던 바로 그 땅에서, 오늘날 다시금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세력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사태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이 역사의 소용돌이가 하필 ‘샤밭 자코르(기억의 안식일, 올해는 2월 28일)’ 무렵에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시사점을 줍니다. 아말렉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읽혀지는 그 시점에, 현대판 하만과 같은 세력에 대한 타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미디어의 혼탁함 속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언론과 미디어가 교묘하게 ‘친이슬람, 반이스라엘’의 성격을 띠며 반유대주의적 선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피상적인 감상주의나 인본주의적 잣대로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거짓에 이끌려가는 세상 속에서 진리를 꿰뚫어 보는 보수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을 굳게 견지해야 합니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편에 서서 그 진리에 순종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 중 토마호크 대지 공격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 미 해군 구축함 프랭크 E. 피터슨 주니어(USS Frank E. Petersen Jr.)함.
3. 영적 군사 훈련: 에스더의 금식과 '말쿠트(מלכות)'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에스더는 왕에게 나아가기 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결단과 함께 3일간의 금식을 선포합니다. ‘금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 힘과 육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늘의 것으로 채우는 영적인 군사 훈련입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더 5장 1절의 히브리어 원어 표현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나아갔다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예복’이나 ‘옷’을 의미하는 단어 없이 단순히 “에스더가 말쿠트(מלכות, 왕권/나라)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이를 두고 에스더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겸손’이라는 신성한 옷을 입었다고 해석합니다. 실제 그 뒤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의 권력이라는 옷 대신, 섬김과 십자가라는 겸손의 ‘말쿠트’를 입으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신부 된 우리 역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과 겸손이라는 옷을 입고 이 어두운 시대 앞에 담대히 서야 합니다.
4. 기쁨과 나눔의 축제: 부림절이 우리에게 남긴 것
결국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하만은 자신이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세웠던 장대에 달리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큰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승리를 기념하며 제정된 부림절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날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부림절이 되면 에스더서를 함께 읽으며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질러 그 이름을 지워버리는 퍼포먼스를 합니다. 또한, 서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미슐로아흐 마노트(משלוח מנות)’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마타노트 라에비요님(מתנות לאביונים)’을 실천합니다. 구원의 기쁨이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부림절의 정신을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슬픔을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성도 간에 서로 음식을 나누고 사랑을 전하며, 교회 밖의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구제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 이 시대의 가장 뚜렷한 이웃사랑은 시대적인 거짓과 불의를 인식하고, 앞장 서서 싸우며 저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희생과 섬김이야말로 결국 많은 영혼을 살리는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 The Hebrew scroll of Esther with masks and hamantaschen.
결론: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14)
모르드개의 이 외침은 오늘날 영적 최전방에 서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럽고, 진리를 훼손하려는 아말렉의 영은 정치,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가장 완전한 역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며, 에스더처럼 금식과 기도로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화려한 옷이 아닌 성령과 겸손의 ‘말쿠트(מלכות)’를 입고, 진리를 수호하며 승리를 선포하는 거룩한 신부로 서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부림절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 가운데서도 동일한 구원과 역전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부록> 부림절 숨은그림찾기 - 온 가족이 함께 해보세요. ^^ (첨부파일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