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처치 첫 번째 침례식

What Baptism Means

왜 예슈아께서는 침례를 명하셨을까요?

침례는 물에 들어가는 의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선언하는 언약입니다.

01

익숙해진 의식

오늘날 교회에서 ‘침례’는 너무도 익숙한 의식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입교의 절차로, 어떤 교회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표현하는 예식으로, 또 어떤 교회에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종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들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침례를 너무 오랫동안 기독교 안에서만 이해하다 보니, 예슈아와 제자들이 살았던 유대적 배경 속에서 침례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02

제자를 삼으라

예슈아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명령 가운데 하나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마 28:19)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눈여겨볼 것은 ‘제자’라는 표현입니다. ‘제자’란 무엇일까요? 제자는 단순히 어떤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한 랍비(스승)를 따라 배우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슈아의 제자가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침례’가 포함되어 있었을까요?

그 답을 이해하려면 먼저 유대인들이 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03

미크바 — 새로 들어가는 문

유대교에는 미크바(מקוה)라고 불리는 정결 예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몸을 깨끗하게 씻는 의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 의미는 훨씬 깊습니다. 유대인에게 이 ‘미크바’는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의식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다시 정결한 상태로 돌아갈 때 ‘미크바’에 들어갔습니다. 결혼을 앞둔 사람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미크바’를 행했습니다. 또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할 때도 물에 들어갔습니다. 즉 이전의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침례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음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이처럼 성경 시대의 침례는 마법이나 주술 같은 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일을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선포하는 행위였습니다.

04

그 이름으로

그래서 예슈아께서 명하신 침례 역시 단순히 죄를 씻는 예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슈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침례가 “예슈아의 이름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은 단순히 이름을 부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적 표현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권위와 통치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나는 이제 예슈아의 권위 아래 살아가겠습니다.”라는 선언입니다.

05

믿음은 충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을 믿음의 전부처럼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은 곧 충성입니다. 왕이신 예슈아께 나의 삶을 맡기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며,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침례는 단순히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는 이제부터 예슈아를 나의 왕으로 섬기겠습니다.”라는 공개적인 충성 서약인 것입니다.

06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사도 바울은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덧붙입니다. 그는 침례를 예슈아의 죽음과 부활에 연결합니다. 물속으로 내려가는 것은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침례는 단순히 몸이 젖는 의식이 아니라, “이전의 나는 끝났고 이제부터는 예슈아의 제자(배우며 따라가는)로 살겠습니다.”라는 삶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침례’는 ‘거듭남’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그림이기도 합니다.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사람이 물에 들어간다고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침례’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신 새로운 생명을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는 언약의 표지입니다.

07

은혜와 순종 사이

이 때문에 침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도 옳지 않고, 반대로 단순한 교회 행사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침례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슈아 마쉬아흐를 믿음으로(충성함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렇다고 침례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예슈아께서 친히 명하신 순종의 첫걸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사람들 앞에서 기쁨으로 고백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08

끝이 아니라 시작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침례’를 다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침례는 단순히 교회의 회원이 되는 절차가 아닙니다. 어떤 교단에 등록하는 의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며, 예슈아의 제자로서 평생 그분을 따르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침례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학교를 졸업하는 의식이 아니라, 예슈아의 제자로 살아가는 긴 배움의 여정을 시작하는 입학식과 같습니다. 물속에서 올라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비로소 제자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침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침례를 단순한 종교 의식으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왕이신 예슈아께 충성을 맹세하고 그분의 말씀을 배우며 살아가겠다는 하나님 나라의 언약으로 다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