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육적인 것이 가장 영적인 것입니다!

손에 잡히는 세계와 하늘의 세계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져 있을까요?
염보연 염보연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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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규례를 따르고 내 명령들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그 철에 비를 내려줄 것이다.” _레위기 26:3-4

신플라톤주의 철학은 존재를 ‘물리적 영역’과 ‘영적 영역’으로 나누어 사유합니다. 물리적 영역은 물질과 손에 잡히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적 영역은 손에 잡히지 않으며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영적인 것 아니면 물리적인 것 둘 중 하나로 가르는 사고방식을 ‘이원론’이라고 부릅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성경 해석은 이 이원론적 접근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질은 대체로 육적이고 악한 것으로 여겨졌고, 고상하고 영적인 개념들만이 참되고 가치 있는 추구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토라 안에서 물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경계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질세계 전체는 그 자체로 영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물질세계는 영적인 것에서부터 지어졌고, 영적인 것은 모든 물리적 형태와 행위 안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적 사고방식에서 물리적인 것을 영적인 것에서 떼어내려는 시도는 거짓된 이분법일 뿐입니다.

모쉐의 관점에서 보면, 적절한 강수량과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것은 곧 영적인 축복이었습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단위로 측정된다고 해서 그 영적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유의 흐름은 초대 교부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부들은 이 사고방식을 영적인 실재와 물리적 실재의 경계를 흐리는 ‘육적이고’, ‘유대적인’ 사고방식이라며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영적으로(spiritual)’ 해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토라가 말하는 저주와 축복 같은 것들은 단지 영적 보상과 형벌을 가리키는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토라의 명령들을 문자 그대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토라의 물리적 명령들은 영적 훈련과 숨겨진 진리를 상징하는 기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사고를 통해 교부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의 문자적 의미로부터 ‘격리’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 전체가 이스라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초대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했습니다. 샤밭(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일요일을 지키라는 뜻으로, 또는 구원 안에서 안식하라는 뜻으로 풀이되었습니다. ‘카쉬루트(코셔 음식법)’를 지키라는 명령은 성경을 묵상하라는 의미로 변형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보상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영지주의적 유령 도시)에 가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되었습니다. 그 슬픈 결과는, 성경이 본래 의도했던 의미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토라의 참된 의도는 이 물리적 세계를 영적 내용, 즉 하나님의 토라와 규례들로 채우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창조 세계’라는 이 물리적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할 때, 우리는 이 물리적 세계를 하나님의 영적 권능(말씀) 아래 복종시킴으로써 그것을 들어 올려 높일 수 있습니다. 영적 실재와 물리적 실재가 하나로 융합된 가장 완전한 본보기는 바로 예슈아의 인격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동시에 평범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가진 모든 한계를 그대로 짊어지신 진짜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온전히 영적이시면서, 동시에 온전히 물리적이신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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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 clouds over 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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