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교리,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말씀을 대신하지 않고, 말씀을 더 잘 읽게 하는 도구
염보연 염보연
2026.08.10
3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토라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 말씀을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교리와 신학에만 우리의 신앙을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자주 강조하는 말들입니다. 모두 필요한 말이고, 지금의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강조가 자칫 잘못 전달되면 또 다른 극단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학과 교리는 나쁜 것인가?”
“신학은 결국 사람의 생각이고, 교리는 인본주의의 산물인가?”
“성경만 읽으면 되는데 굳이 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심각한 오해입니다. 신학과 교리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인간에게 주신 매우 중요한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각하고, 분별하고, 기억하고, 언어로 표현하며,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입력하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서로 비교하고, 의미를 정리하고, 삶으로 살아내며,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이 말씀은 이런 뜻이구나”라고 이해하는 순간부터 이미 ‘해석’은 시작됩니다. 그 깨달음을 정리하고 반복해서 가르치면 교리가 되고, 여러 성경 본문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신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학과 교리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만약 “성경만 읽고 아무런 해석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성경을 읽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깨달아도 그것을 정리해서는 안 되고, 기록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예슈아께서 명하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고 배우며 점차 언어를 익히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훈련받으며 점점 장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씀을 더 정확하고 지혜롭게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신학과 교리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들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인 것입니다. 즉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있고, 그다음에 신학과 교리가 있는 것입니다. 신학과 교리는 성경을 더 잘 읽고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성경이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는 말씀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이지, 말씀 위에 서는 최종 권위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뒤집히는 순간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미 만들어진 교리와 신학 체계를 먼저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워 놓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그 틀에 맞추어 읽게 됩니다. 어떤 구절은 강조하고, 어떤 구절은 축소하며, 어떤 말씀은 기존 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더 이상 우리를 판단하는 '진리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구절을 찾아내는 '자료집'이 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교회의 가장 위험한 지점입니다. 신학이 성경을 섬기지 않고, 성경이 신학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교리는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교리가 절대화되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보다 “우리 교단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이때부터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계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의 번역본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문은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우리가 읽는 번역본은 그 말씀을 각 언어로 옮긴 결과입니다. 번역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번역자의 해석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고, 여러 번역을 비교하며, 문맥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그 성경을 다시 인간의 사고 체계로 정리한 신학과 교리는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더 큰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학과 교리는 언제든 다시 성경 앞에 세워져 검증받아야 합니다. 더 정확한 이해가 발견되면 수정해야 하고, 놓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해야 하며, 성경과 충돌한다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신학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신학을 가장 건강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 순서가 상당히 뒤집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유명한 신학자의 이름이나 특정 교단의 교리는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성경이 실제로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질문하면 먼저 성경 본문을 찾기보다 자신이 배운 교리적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학과 교리가, 오히려 사람들이 성경을 직접 읽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경우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습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할 수 있는대로 소리 내어 읽고, 반복해서 읽으며, 문맥을 살피고, 질문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익숙한 구절이라도 이미 알고 있다고 넘어가지 말고 다시 말씀 자체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단순히 좋은 문장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단지 많이 읽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를 더 깊이 알고자 연구하고, 바르게 이해하려 애쓰며, 삶으로 지켜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건강한 신학과 교리가 필요합니다. 신학은 말씀을 대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교리는 사람을 어떤 조직의 틀 안에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하게 분별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신학은 때로 성경 자체보다 철학과 학문의 체계를 더 많이 닮아 왔고, 교리는 때로 진리를 지키기보다 교단과 조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경이 본래 말하고 있는 방향과 멀어진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을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신학을 다시 성경 아래에 세우는 일입니다. 교리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교리를 다시 말씀 앞에서 검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자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지켜 행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이해를 끊임없이 다시 말씀 앞에 내려놓고 점검하는 것. 이것이 건강한 신학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좋은 신학은 우리를 성경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더 읽게 합니다. 좋은 교리는 생각을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질문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신학과 교리는 자신을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bible-study-session-christianity-religion-spiritual-symbol.jpg

 

3
Comments3
  • 조안나 2026.08.10 13:14
    목사님 궁금했던 부분을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자유주의, 인본주의자들이 "개혁주의"를 도구로 사용하고, 교리를 성경 위에 올리는 논리적 흐름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기성 교단들마저ㅠㅠ
    제가 말씀으로 무장되지 못해 답답하고 피로감만 쌓여갔던 것 같습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열심히 말씀을 소리내어 읽고 듣고 먹겠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소서
  • 이풍훈 2026.08.10 15:18
    하나님 말씀앞에 기초부터 바로선 삶을 소망하여,복잡하고 다양해진 삶에 토라의 말씀으로 좁고,간결한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 김혜영 2026.08.12 17:19
    신학은 성경을 더 깊이,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보조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보다 더 높은 곳에 신학이나 교리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그 순서가 제 삶에서 뒤바뀌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