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다녔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천국에 언제 가게 됩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교회 시대는 얼마나 계속됩니까?”라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슈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행 1:6)
이 질문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장 많은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슈아와 사십 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계속 배우고 난 뒤에 내놓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질문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아직 뭘 몰라서 이런 수준 낮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사실 영적인 교회를 세우려 하셨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정치적인 이스라엘 왕국만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통치이며, 구약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예언들은 모두 ‘교회’를 가리키는 상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왜 예슈아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을 바로잡지 않으셨을까요?
예슈아께서는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제 끝났고, 앞으로는 교회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행 1:7). 즉 예슈아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 때를 말씀하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기대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직 그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질문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가 품고 있던 소망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메시아께서 오셔서 다윗의 왕위를 회복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며, 예루살렘에서 열방을 다스리실 날을 예언했습니다. 에스겔은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고 조상들에게 주어진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영원한 화평의 언약을 맺으시고, 성전을 그들 가운데 두실 것이며, 열방은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겔 37:24-28).
이사야와 미가도 같은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열방이 모여드는 중심이 되고, 민족들은 시온으로 올라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시대가 열립니다. 스가랴는 예슈아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을 예언하고,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예언들은 모두 실제 땅과 실제 도시, 실제 민족과 실제 왕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이것을 단순한 상징이나 비유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역시 같은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다윗의 왕위에 앉으시고, 하나님의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약속하셨던 왕국(kingdom)이 마침내 ‘이 땅 가운데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시편 2편을 반복해서 인용했던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을 시온에 세우시고, 열방을 그의 기업으로 주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다는 약속은 그들에게 미래의 실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의 이해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교회가 유대적 배경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헬라 철학의 강한 영향을 받으며, 로마 제국 안에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회복'은 '교회'를 가리키는 영적인 상징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은 '하늘나라'의 비유가 되었으며, '다윗의 왕위'는 '교회의 영적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수많은 약속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성취될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이미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슈아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성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우고 들었던 사람들의 이해와, 수백 년 뒤 형성된 신학 체계가 서로 다르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까요? 성경을 후대의 해석으로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본문이 말하는 내용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체계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눈으로 다시 읽기 시작하면, 구약의 예언과 예슈아의 말씀, 사도들의 소망이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슈아를 왕으로 모신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며, 그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지 완성이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전쟁은 계속되며, 이 땅의 왕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현실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실제 역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왕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왕위가 회복되고, 예루살렘에서 메시아의 통치가 시작되며,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열방이 그분의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공의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느 한 신학 체계의 주장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서 시작하여 선지자들이 반복해서 선포했고, 예슈아의 제자들이 끝까지 기다렸던 성경의 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우리는 단지 ‘죽은 뒤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창조의 회복, 언약의 성취, 메시아의 통치, 그리고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질 왕국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큰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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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풍훈 2026.08.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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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 2026.08.18 17:57아멘아멘!
기록된 말씀 속 예수님 초림의 예언들은 모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는데,
예수님 재림의 예언은 상징과 비유로 끼워맞추려는 것 자체가 교만이자 믿음의 연약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약 성취가 이 땅 가운데 완성될 날을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
이지영 2026.08.21 01:04“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며 자신의 딸을 치유해주시길 간구했던 가나안 여인.
이 여인의 마음을 가진 이방인들만이, 교만한 눈을 버리고, 마쉬아흐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다윗의 왕위를 회복하시고,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며, 예루살렘에서 열방을 다스리실 날이 '실제로', '이 땅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고대할 것입니다.
예슈아 우리 왕이시여, 어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소서!
태초에 하나남께서 만드셨던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그날까지 광야와 환란을 잘 견디어, 토라의 말씀으로 걸어가며, 언약의 성취와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충성된 예슈아의 제자로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