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거듭해서 토라를 지키라고 권면했고, 여호수아와 사사들, 왕들과 선지자들 역시 한결같이 같은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는 백성에게는 복을 약속하셨고, 말씀을 버리는 백성에게는 언약의 저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약에 이르러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이해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토라를 지킬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계속 지키려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백성에게 요구하셨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뒤집으신 것일까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집 안에서는 절대로 공놀이를 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여러 번 그 약속을 어기고 집 안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그때마다 꾸중을 듣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를 불러 갑자기 매를 듭니다. 아이가 놀라서 “제가 뭘 잘못했어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왜 집 안에서 공놀이를 하지 않았니?”라고 대답합니다. 아이가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그건 이제 끝났다. 앞으로는 집 안에서 공놀이를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혼날 거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심지어 변덕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신학은 하나님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1,400년 동안 자신의 백성에게 토라를 지키라고 명령하셨고, 그 말씀을 버릴 때마다 징계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도, 나라의 멸망도, 선지자들의 눈물 어린 경고도 모두 같은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뒤에는 토라를 폐하셨고, 이제는 토라를 계속 지키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신명기를 다시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저주의 이유를 얼마나 분명하게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신 28:45). 그리고 다시 “이 율법책에 기록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삼가지 아니하고”(신 28:58)라고 반복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저주의 이유를 말씀을 버린 데서 찾으십니다. 그 이후의 선지자들도 똑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제 토라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돌아오라.”, “언약으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회복의 길은 언제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선포하셨을까요? 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을 ‘율법에서 은혜로의 전환’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라는 뜻의 히브리어 테슈바(תשובה)는 ‘돌아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언약으로,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토라를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토라가 처음부터 가리키고 있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은 토라를 버리는 복음이 아니라, 토라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는 복음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새 언약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새 언약을 ‘옛 언약을 폐기한 새로운 계약’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설명하면서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렘 31:33)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없애겠다고 하신 것은 토라가 아니라, 돌판에 새겨져 있었지만 지켜지지 못하던 인간의 완고한 마음이었습니다. 에스겔은 그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 36:27).
‘새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 말씀을 살아 내게 하시는 시대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의 힘으로 순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서 순종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토라를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슈아 마쉬아흐를 믿는(trust)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도 사랑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자녀는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말씀’을 소중히 여기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를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게 하시고, 이전에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던 순종을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라.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시 95:7)이라고 노래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초청을 반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변덕스럽게 자신의 뜻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한 번 하신 약속을 끝까지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은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말씀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부르심입니다. 그것이 모세가 전한 메시지였고, 선지자들이 외친 메시지였으며, 예슈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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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2026.08.25 10:09 -
조안나 2026.08.25 10:27토라포션을 하면서 신약 속 예슈아께서 얼마나 많은 토라의 말씀을 암송하시고 인용하셨는지 알게되었습니다...
돌판에 새겨졌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완성하신 예슈아의 길을 좇아가겠습니다. -
이지영 2026.08.25 10:56"여호와께 돌아가자!"
찬양으로도 많이 불렀던 말씀입니다만, 정작 여호와께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나쁜 짓 하지 않고, 좀 더 자선을 베풀고, 유교나 불교나 다른 많은 종교에서도 말하는 '선함'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며, 그분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토록 변개치 않으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50대의 나이이지만 가장 적절한 때에 깨우쳐 주심을 믿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행함을 전제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하가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을 통하여 알아가겠습니다. -
이풍훈 2026.08.25 12:09에덴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신명기28장의 복과 저주의 말씀으로,제 신앙을 점검하며,새롭게 변화되길 바라오며.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저와 가정되길 소망하며,돌파!돌파!돌파!하겠습니다.
이 날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규례들과 그 법규들을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니 너는 그것들을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여 지켜 행해야 한다. (신명기 26장 16절)
오늘, 지금 이순간 하나님안에 있는 통치를 경험하는
진정한 테슈바의 시간과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