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목회자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평신도 의식'이 교회를 약하게 만드는 이유
염보연 염보연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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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 안에는 너무도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성경은 한 번도 그렇게 구분한 적이 없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의식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양한 직분이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 교사와 집사,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교회를 돌보는 사람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의 차이는 역할의 차이일 뿐,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까지 나누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는 ‘직분의 구분’을 ‘책임의 구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는 일은 목회자의 몫이고, 성경을 깊이 아는 일도 목회자의 몫이며,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향해 진리를 증언하는 일 역시 사역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대부분의 성도는 자신을 ‘평신도’라고 부르며 그 책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교회를 매우 이상한 구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목회자는 누구보다 거룩해야 하고,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하며, 누구보다 헌신해야 하고, 실수해서도 안 되고, 상처를 받아서도,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반면 일반 성도는 조금 말씀을 몰라도 괜찮고, 신앙생활이 다소 느슨해도 괜찮으며, 기도하지 못해도, 전도하지 않아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결국 신앙은 목회자가 책임지고 이끌어가며, ‘평신도(?)’는 그 사역의 혜택을 받는 ‘소비자’가 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이런 교회를 상상한 적이 없습니다.

 

토라는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토라를 제사장들에게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언약은 레위인과 제사장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과 맺으신 것이었습니다. 토라가 낭독될 때에는 왕도, 제사장도, 장로도, 남자와 여자도, 어린아이도, 심지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는 나그네까지 함께 모여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너는 제사장이 아니니 이 말씀은 몰라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억하고, 지켜 행하는 책임은 언약 안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이 점은 유대교의 역사에서도 매우 흥미롭게 드러납니다. 성전이 존재하던 시대에는 제사장이 제사를 집례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진 뒤 유대교의 중심적인 영적 지도자는 제사장이 아니라 랍비가 되었습니다. 물론 제사장이면서 랍비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랍비는 평범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적 권위는 혈통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고, 살아내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삶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토라가 처음부터 제사장만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러한 전통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교회 전체를 향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만을 향한 선언이 아닙니다. 예슈아를 믿는 모든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소수의 제사장을 두시고 나머지를 일반 백성으로 남겨 두신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과 역할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배우고, 거룩하게 살아가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책임은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는 ‘평신도 의식’이 너무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호칭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의 책임과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자기는 뒤로 숨어 버리는 사고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은 목회자가 연구하면 되고, 기도는 중보팀이 하면 되며, 전도는 전도사가 하고, 다음 세대는 교사가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일도, 세계관을 세우는 일도, 신학을 연구하는 일도 특정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성도는 점점 수동적인 신앙에 머물게 됩니다. 예배를 소비하게 되고, 설교를 평가하게 되며, 목회자에게 걸핏하면 상처 받고, 교회 시스템을 이용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책임을 맡고 있는지 묻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몇 사람의 헌신과 서비스로 유지되는 공동체나 기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온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고, 온 백성이 함께 말씀을 배우며, 함께 순종하고, 함께 다음 세대를 가르치도록 부르셨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목회자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성도의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것도, 성경적 세계관을 세우는 것도, 가정을 말씀 위에 세우는 것도, 세상 속에서 진리를 증언하는 것도 어느 한 직분에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목회자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책임 있는 백성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이라면, 그것은 본인 자신에게도 그대로 마찬가지이며, 본인 자신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그것은 목회자가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 의식이 사라질 때 교회는 필연적으로 약해집니다. 목회자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을 홀로 짊어지고 지쳐 가며, 성도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공급만 받으려 합니다. 결국 목회자는 ‘사역자’가 아니라 ‘종교 서비스 제공자’가 되고, 성도는 제자가 아니라 ‘종교 소비자’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를 목회자의 실패에서만 찾으려 하고 실제로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스스로를 ‘평신도’라고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내려놓은 교회 전체의 의식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백성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단순히 자기 영혼이 구원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켜 행하며, 자녀에게 가르치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백성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교회가 다시 살아나고 부흥하는 날은 언제일까요? 목회자가 더 뛰어난 설교를 하는 날일까요? 목회자가 더 뜨거워지고, 기도를 많이 하게 되고, 은사와 능력을 발휘하는 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이상 스스로를 ‘평신도’라고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도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일 것입니다. 그날부터 말씀은 강단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정과 일터, 학교와 사회 속으로 흘러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교회는 비로소 몇 사람의 모임이나 종교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 전체가 함께 살아 움직이는 주님의 살아있는 몸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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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6
  • 진주영 2026.09.04 09:25
    아멘
    아직도 온전히 벗지 못한 옛 교회에서의 습관을 버리기 위해 하나님과 나와의 1대1 언약 관계를 다시 각성하고 나의 영적 성장에 더 집중하기 위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지켜 행하며 자녀에게 가르쳐 가정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지도록 하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감당하는 자로 바로 서겠습니다
  • 이풍훈 2026.09.04 09:37
    아멘!!
    찬양팀,콰이어,목사님을 바라보며,공연장에 뮤지컬을 보러온 관객이었던 저를 돌아봅니다.교회의 일을 누군가에게 미루며,말씀 암송하자고 하면,이번주는 교회 쉴까 했던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그렇습니다.토라의 말씀앞에 각자 바로서서 너가 아닌 나부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겠습니다.
  • 김수윤
    김수윤 2026.09.04 11:56
    아멘
    구원의 은혜와 감격은 있으나 구원받은 자로써의 책임있는삶이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정죄와 원망과 불평은 쉬우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주의 몸된교회라 요구하며 부름받은 성도로써의 스스로의 사명을 무겁게 여기지못했습니다
    하나님앞에 저의삶을 말씀으로 더욱 세밀하게 깨닫게 하시고 책임을 감당할 자리를 부지런히 발견케하시어 행함이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 김연경
    김연경 2026.09.04 17:21
    세상속에서도 우리는 앞에서 권한은 내세우지만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할때도 있고, 회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다양한 사명을 맡은것이지만
    진리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며 준행하는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는
    반사체로써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때 그리고 해야 할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을 구별하여 지킬 때 제사장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것을 기대합니다.
  • 조안나 2026.09.05 18:41
    마음 속 깊숙히 잘못 박혀있던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쓴뿌리들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목사님들 중에서는 점차 스스로 높아지고 평신도와 자신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말씀으로 비추어 강권하시고 스스로는 낮추시는 목사님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목사님처럼 스스로 테필린을 만들 수 있기를, 그래서 환난과 핍박이 심해질때도 단독자로써 꺾이지 않도록 말씀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겠습니다!
  • 라채돈
    라채돈 2026.09.08 12:27
    나의 말과 행동엔 의미를 불어 넣으며
    자연스레 교만과 나르시시즘에 빠져 시험에 들고, 들게 하는 것이 나의 전공이라
    나서지 않고 묻어가는 것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뛰쳐 나오려는 자아를 마주할 때마다 되뇌는 나서지 마라 나서지 마라
    이것 또한 다른 모습의 교만이며 책임 회피, 자기 합리화임을 봅니다.
    나의 안에서 시작된 모자라고 악한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오직 순종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음과
    그 언약의 내용들을 찾아 마음에 새겨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