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

약속의 아들은 결코 늦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오십니다!
염보연 염보연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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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늙었고 사라에게도 아이를 낳을 가능성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인간적인 시간표로만 보면 약속은 이미 때를 놓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훼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_창 18:14

 

여기서 ‘기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바로 모에드(מועד)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미리 ‘지정해 놓으신 시간’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또 다른 곳에서도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들을 성경은 모아딤(מועדים)이라고 부릅니다. 모에드의 복수형인 것입니다. 흔히 한글번역 성경에서는 이를 ‘절기’라고 번역하지만, 원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약속된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모에드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라는 막연한 약속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달력에는 이미 그 약속이 이루어질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유대 랍비들은 이삭이 과연 ‘어느 모에드에 태어났는지’를 오래전부터 논의했습니다. 탈무드에는 이삭이 유월절에 태어났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로쉬 하샤나와 연결하는 전승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이삭의 정확한 출생일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생겨난 이유 자체는 의미심장합니다. 유대인들은 창세기에서 사용된 ‘모에드’라는 단어를 보면서, 약속의 아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별한 때에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이삭의 출생은 처음부터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다리다 지쳤고, 결국 자신들의 방법으로 약속을 이루려 했습니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얻은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조급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시간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게 하셨고, 모든 인간적 가능성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순간 약속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는 일정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정확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지연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는 예정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은 장차 오실 또 다른 약속의 아들, 예슈아 마쉬아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갈 4:4)라고 말합니다. 예슈아의 초림 역시 우연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차매 아들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죽음과 부활, 성령의 강림은 성경의 봄 절기들과 긴밀하게 맞물려 일어났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이 잡히는 때에 실제로 잡히셨고, 어린양이 죽는 때에 죽으셨으며, 첫열매의 예물을 드리는 때에 부활하셨으며, 토라의 언약이 주어진 오순절에는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아딤이 메시아의 구속 사역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표처럼 실제 이 땅 가운데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슈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그 왕국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행 1:7)고 하셨습니다. 마쉬아흐의 재림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공개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날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이 점에서 성경의 절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훈련을 제공합니다. 봄 절기를 통해 우리는 이미 오신 메시아를 기억하고, 가을 절기를 통해 아직 남아 있는 약속을 기다립니다. 특히 나팔절의 나팔은 장차 큰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메시아, 죽은 자들의 부활과 흩어진 자들의 모임, 그리고 마쉬아흐 킹덤의 도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렇다고 예슈아의 재림의 날짜를 알아 맞추기 위해 특정 연도의 나팔절을 재림의 때로 지정하거나 제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 날과 그 때를 감추신 이유는, 그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유익하고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더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힘들어합니다. 약속이 빨리(내 기준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잊으신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내 기준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내 기준에서)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합니다(내 기준에서). 아브라함도 그랬고 사라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조급함에 맞추어 자신의 약속을 수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인간이 막을 수도,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소망입니다. 세상의 악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발적인 사건에 따라 결정되고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모에드’가 있습니다. 이삭이 그랬듯 약속의 아들은 정하신 때에 왔고, 예슈아께서 초림하셨던 것처럼 왕께서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약속의 내용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까지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내용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조급함 때문에 그 약속을 왜곡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비록 보이지 않아도, 아직 내 생각대로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우리의 해야 할 일은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한 문장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정한 때에 내가 돌아오리라!” 하나님께서는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 약속의 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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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6
  • 김연경
    김연경 2026.09.08 08:30
    아멘,
    막연한 믿음이 결국 현실을 살아갈때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삶으로 나타났었음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일이 주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인정해 드리며, 인간적인 조급함을 내려놓고, 연습중인 우리가 장차 오실 하나님 나라의 나팔 소리를 듣는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 조안나 2026.09.08 08:43
    아멘 아멘! 더딘 듯 보여도 절대 늦지 않는 모에드를 기다립니다.
    결혼한 지 5년 차에 접어들면서 아직 아이를 허락하지 않으신 저희 가정에게 로쉬 하샤나의 말씀은 더욱 피부에 와닿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불안과 자기연민에 매몰되어 기도만 하면 울기만 했던 적도 있고,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하며 거래(?)를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한나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더 이상 근심하지 않고 내려와 가족들과 함께 경배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의 약속을 근심이나 불안으로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를 사모하지 않던 저에게,
    마지막 때를 사모하고 준비하라고 주신 예비 훈련임을 알고 기쁘게 순종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이풍훈 2026.09.08 10:32
    아멘 아멘!!
    성질급한 저에게 딱 맞는 말씀이네요~
    가정,자녀,재정,나라 등 모든것이 뜻데로 되지않고,왜이리 더디고,멈추어 서있는지,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는듯한 나날들 ? 늘 답답해 열불나고, 속터져 씨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않마시면 않되는 하루하루~
    늘 바로 지금 바로만 외치던 저의 심령에 모에드를 알게하시고,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나팔소리 울려퍼질때까지, 참고, 인내하고 토라의 말씀으로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 라채돈
    라채돈 2026.09.08 11:45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에 언젠간 되겠지 포기하듯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고 기쁨으로 살고 있는지
    나의 어디까지를 하나님의 때에 내어 드리고 있는지,
    책임 회피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기를
    그날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나의 가벼움에 속이 상하여
    다시 말씀을 붙잡습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고
    정한 때에 돌아오실 나의 왕 하나님께
    오늘도 믿음을 구하며 엎드립니다.
  • 이지영 2026.09.08 13:36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인간이 막을 수도,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습니다.'
    아멘아멘!!!
    하나님의 정하신 모아딤을 따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갈 때, 그리 오래지 않은 미래에 그 모든 언약의 성취를 목격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증언하며 그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 박혜준 2026.09.08 17:20
    아멘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시간표를 앞서가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때를 온전히 신뢰하며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